1945년 해방 직후 실시된 남한과 북한의 토토사이트 토사장은 한반도 분단의 정치적 배경을 뚜렷하게 반영했다. 당시 양측 모두 ‘토토사이트 토사장’을 사회 변화의 핵심으로 삼았지만, 시행 방식과 결과는 완전히 달랐다.
북한은 해방 직후인 1946년 3월 ‘무상몰수 무상분배’ 방식의 급진적인 토토사이트 토사장을 단행했다.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는 지주의 토지를 몰수한 뒤 농민에게 무상으로 분배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이 과정에서 지주 계층은 완전히 소멸했고, 몰수된 토지는 소작농 등에게 무상으로 지급됐다. 이 같은 개혁은 공산주의 이념에 기반해 지주 계급 청산과 새로운 사회주의 체제 구축의 첫 단계였다.
남한은 북한보다 늦은 1949년에 토토사이트 토사장법을 제정하고 1950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했다. 북한과 달리 남한의 토토사이트 토사장은 ‘유상매수 유상분배’ 원칙으로 추진됐다. 정부가 지주에게 일정 대가를 지급하고 토지를 매입한 후, 농민에게 그 비용을 받고 다시 분배하는 방식이었다. 결과적으로 남한의 토토사이트 토사장은 북한보다 온건했으며, 지주층도 일정 부분 경제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남북 토토사이트 토사장의 가장 큰 차이는 결과에서 나타났다. 북한은 지주 계층을 완전히 철폐하고 사회주의 경제 체제의 기초를 마련했지만, 이후 급격한 집단화 정책으로 개인의 토지 소유가 사라지고 국가 소유로 전환됐다. 반면 남한은 농지의 개인 소유를 유지하면서 농민층의 경제적 기반을 넓히고, 지주 계층이 산업자본가로 전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시장경제 발전의 기틀을 다졌다.
전문가들은 남북한의 토토사이트 토사장이 단지 경제적 문제만이 아니라 이후 정치 체제와 사회 구조를 형성하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평가한다. 같은 민족이면서도 이념 차이에 따라 상반된 토지정책을 채택함으로써 분단의 고착화를 가속한 셈이다. 당시의 토토사이트 토사장은 현재까지 남북 경제체제의 근본적인 차이를 이해하는 핵심 배경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