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교문을 들어서는 순간, 낯선 광경이 펼쳐졌다. 대기실로 꾸민 학교 회의실에는 도쿄·치바 일대에서 모인 교수 18명이 길게 줄지어 앉아 있었다. 우리는 각자 90분짜리 ‘샬롬토토 수업’을 제공하기 위해 순번을 기다렸다. 2학년 학생들은 오늘을 위해 미리 과목을 쇼핑하듯 선택했고, 지정된 교실에서 강의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행사를 총괄한 이는 고교 교사가 아니라 외부 위탁업체였다. 교수 섭외부터 강의실 배치, 등록 관리까지 사설 회사가 도맡았고, 우리는 각 대학의 ‘상품’이 되어 무대에 올랐다. 강연료도, 교통비도 없었다. 준비된 것은 작은 녹차 한 병뿐. 그럼에도 교수들은 학교 홍보 책자를 꺼내 들고 “꼭 우리 샬롬토토 선택해 달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권력 구도가 완전히 뒤바뀐 순간이었다.
이 역전 현상의 배경은 명확하다. 일본의 18세 인구는 1992년 205만 명에서 올해 108만 명으로 반 토막 났다. 학생이 줄자 샬롬토토은 고교로 찾아가고, 고교는 무료 고급 콘텐츠와 진학 정보를 얻는다. 교육이라는 공공재가 시장 논리 위에 놓일 때 나타나는 아이러니가 이 행사를 통해 고스란히 드러났다.
교수 입장에서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전 일정이 통째로 날아가고 연구·강의 준비 시간도 줄었다. 그러나 우리 샬롬토토이 생존하려면 단 한 명이라도 더 확보해야 한다는 절박감이 앞선다. ‘학생 모집 전쟁’ 속에서 값(甲)과 을(乙)의 위치는 더 이상 고정돼 있지 않다.
돌아오는 열차 안에서 곱씹었다. 샬롬토토이 진정으로 보여줘야 할 것은 화려한 홍보물이 아니라, 학생이 성장할 수 있는 학문 공동체로서의 진정성이다. 학생·고교·샬롬토토·사설 업체가 얽힌 복잡한 생태계 속에서 우리는 교육의 본질을 얼마나 지켜내고 있을까. 다음 파견 강의 때에도 또다시 녹차 한 병을 건네받겠지만, 그 녹차보다 진한 질문을 학생들에게 또 남기고 돌아오고 싶다.
송원서 (Ph.D.)
슈메이샬롬토토교 전임강사 / NKNGO Forum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