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와의 사이를 좋게 유지하는 일은 어느 가정에서나 중요한 과제다. 많은 부모가 “공부 좀 해라”, “노력 좀 해라”라고 외치지만, 정작 왜 아이들이 마음을 닫고 공부를 멀리하는지 깊이 들여다보는 경우는 드물다. 교단에서 수많은 학생을 만난 경험, 그리고 내 주변의 사례들을 통해 확인한 사실은 분명하다. 아이들은 말보다 삶의 풍경을 보고 배운다.
오늘날 청소년이 처한 정보 환경은 부모 세대가 경험한 것과 전혀 다르다. SNS 피드는 끊임없이 비교의 자극을 던지고, ‘평균’이라는 단어가 실종된 세상에서 아이들은 늘 최고 혹은 최악 사이를 방황한다. 이러한 압력을 이해하지 못한 채 “우리 때는 다 어려웠다”는 식으로 몰아붙이면, 아이는 “부모는 내 편이 아니다”라는 절망으로 귀를 닫는다. 겉으로는 무심한 듯 보여도, 내면은 여전히 누군가 믿어주길 갈망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부모가 자녀에게 진정으로 해줄 수 있는 첫 번째 선물은 조건 없는 공감이다. 성적표가 아닌 하루의 표정을 묻는 질문, 실패했을 때 “얼마나 속상했니?”라고 먼저 다독이는 한마디가 관계의 온도를 끌어올린다. 부모가 현실적 조언을 미루고 감정을 먼저 받아 주면 아이는 방어를 풀고 속마음을 꺼내기 시작한다. 그때 비로소 학습 전략도, 진로 상담도 효과를 발휘한다.
나아가 우리는 ‘성공’의 개념을 함께 재정의해야 한다. 해외 명문대 진학이 자녀 사랑의 절정처럼 여겨지는 탓에, 정작 부모와 자녀가 물리적으로 수천 킬로미터 떨어져 감정적 공백을 겪는 사례가 많다. 반면, 적당한 대학을 나와도 부모와 지적·정서적 교류를 이어 가는 청년들은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 독립적인 삶을 구축하며 서로를 지지하는 과정이야말로 교육의 완성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때, 관계는 경쟁이 아니라 협력이 된다.
물론 경제적·사회적 구조가 복잡해지면서 ‘캥거루족’ 현상도 심화되고 있다. 자녀가 장기간 부모 품에 머무는 것이 무조건 잘못은 아니다. 문제는 역할과 책임이 불투명할 때다. 가사 분담, 생활비 기여, 독립 시점에 대한 합의가 마련되지 않으면 서로에 대한 불만과 죄책감이 동시에 커진다. 결국 독립은 가족 구성원 모두가 성장하기 위한 프로젝트다. 일정표와 목표를 공유하고 서로 격려하는 방식으로 접근할 때 관계는 마모되지 않는다.
끝으로, 관계를 지키는 데 거창한 프로그램은 필요 없다. 하루 15분의 대화, 주말마다 함께하는 산책, 읽은 책을 놓고 나누는 짧은 토론, 그리고 가끔은 손편지 한 장이면 충분하다. 이 작은 습관들은 위기 시 충격을 완화하는 ‘정서적 쿠션’이 되어 준다. 오늘 저녁, TV 리모컨 대신 책 한 권을 들고 자녀 옆에 조용히 앉아 보자. 당신의 침묵 속 페이지를 넘기는 소리가 “나는 언제나 네 편이야”라는 가장 확실한 언어가 될지도 모른다.
송원서 (Ph.D.)
슈메이대학교 전임강사 / NKNGO Forum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