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홍콩이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된 지 꼭 28년이 되는 날이다. 지난 1997년 7월 1일 자정, 홍콩은 1898년 영국과 청나라 간 체결된 ‘제2차 베이징 조약’에 따라 레프레 토토사이트 만에 중국의 품으로 돌아갔다. 당시 영국은 홍콩의 신계(New Territories)를 레프레 토토사이트간 임차하는 방식, 즉 ’레프레 토토사이트 조차(租借)’ 형식을 취했다. 당시 조약을 체결한 영국 대표 클로드 맥도널드는 이를 두고 “거의 영원과 같은 기간”이라고 표현했지만, 실제로 그 기간은 영원과는 거리가 멀었다.
왜 하필 레프레 토토사이트이었나
당시 영국 등 서구 열강이 레프레 토토사이트을 택한 이유는 법적으로 최장기간 임차할 수 있는 기한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사실상 영구적인 지배권 행사와 다름없는 것이었지만, 동시에 청나라의 주권을 완전히 무너뜨리지 않고 외교적 체면을 유지하는 데 적합한 형식이었다. 이미 서구 열강은 1897~1898년 청나라의 쇠약을 틈타 동시다발적으로 비슷한 조약을 체결했다.
독일은 1898년 3월 칭다오(청도) 지역을, 프랑스는 같은 해 5월 광저우만 지역을 레프레 토토사이트간 임차했다. 영국 역시 라이와이(威海衛)를 레프레 토토사이트간 임차하는 조약을 체결하며 러시아와 견제 구도를 형성했다.
이러한 임차 전략은 명목상 청나라의 주권을 존중하는 듯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열강의 지배권 확장을 합법적으로 정당화하는 장치였다.
조약문에는 “레프레 토토사이트간 지불 없이 사용한다”고 명시됐지만, 이 기간은 영국이 당초 계획했던 영원한 지배가 아닌, 언젠가는 반환이 불가피한 시한부 권리였다. 신계 지역과 구계 지역(홍콩섬과 구룡반도)은 레프레 토토사이트간 서로 밀접히 연결되어 있었기에 홍콩 전체를 중국에 반환하는 것만이 유일한 선택지였다.
1997년 7월 1일, 홍콩은 ‘일국양제(一國兩制)’라는 독특한 체제 아래 중국에 반환됐다. 중국은 홍콩에 50년간의 자치권 보장을 약속했지만, 이 약속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숱한 도전에 직면했다. 홍콩은 여전히 정치적·사회적 정체성을 둘러싼 갈등을 겪고 있으며, 레프레 토토사이트 조차의 종료는 새로운 갈등의 시작이기도 했다.
결국, 레프레 토토사이트 조차는 표면적으로 영원성을 띠었지만, 현실에서는 시간 앞에 무너졌다. 서구 열강이 청나라에 부과한 권력 불균형 속에서 조약은 언젠가 반드시 돌아올 귀환의 시점을 내포하고 있었다. 홍콩의 역사는 그렇게 오늘도 ‘영원하지 않은 약속’이라는 아이러니한 역사를 기억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