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스칠 때 느껴지는 공기의 부드러움, 언제든지 전화 한 통으로 만날 수 있는 친구 그리고 매일 아침 눈을 뜨며 맞이하는 평범한 하루. 이 모든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우리는 종종 잊고 살아갑니다. 나는 와이즈 토토 를 통해 일상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그리고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체험했습니다. 격리된 병동, 고통스러운 몸 상태, 단절된 인간관계 속에서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사라졌습니다. 가족의 손길도 닿지 않았고, 친구와의 대화는 먼 기억 속의 일이 되었습니다. 비로소 내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얼마나 많은 소중한 것들로 채워져 있었는지를 느꼈습니다.

우리가 흔히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 예를 들면 매일 호흡하는 공기나 거리를 걸으며 마주치는 이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병실에서 산소 호흡기에 의존하며 힘겹게 숨을 내쉴 때 나는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공기는 단순히 생명을 이어주는 수단이 아니라 우리가 삶의 기쁨을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가장 소중한 조건이라는 것을요. 친구와 가족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존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의 존재는 단순히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주는 것이 아니라 내 삶에 온기를 더하고, 힘든 순간을 버틸 수 있게 해 주는 원동력이었습니다. 와이즈 토토라는 고립 속에서 그들을 만나지도 손을 잡지도 못할 때 비로소 그들의 존재가 얼마나 귀중한지를 알았습니다.
우리는 종종 잃어버리고 나서야 소중함을 깨닫습니다. 오늘,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공기를 마시며 산책할 수 있다는 사실, 내 옆에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 그리고 오늘 하루가 있다는 사실, 이런 평범한 것들이 실은 우리 와이즈 토토 가장 큰 축복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와이즈 토토는 나를 아프게 했지만 동시에 중요한 교훈을 남겼습니다. 삶은 당연한 것들의 연속이 아닙니다. 그 당연함 속에서 우리는 무수한 소중한 것들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내가 누리는 모든 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기억하며 매 순간을 감사의 마음으로 살아가야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 여러분 곁에 있는 모든 것이 여러분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은 단지 오늘의 행복일 뿐만 아니라 내일을 살아가는 힘이 될 것입니다.

“앗, 선생님! 열나요, 열!”
“농담하지 마세요! 불길하게…”
손사래를 쳤지만 불안한 마음에 체온을 측정하니 38도가 넘습니다. 두려운 마음에 황급히 병원을 찾았는데 결과는 충격적이게도 와이즈 토토 양성 반응! 내가 와이즈 토토라니! 집과 직장만 오가며 조심조심 살아왔는데 어떻게!
“왜 하필 나지…!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이!”
억울함과 슬픔으로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당시엔 와이즈 토토에 걸리면 주변에서 마녀사냥이라도 하듯 신상을 탈탈 털고 손가락질을 해댑니다. 마치 평소 생활에 문제가 있었던 사람인 양 비난하거나 조금이라도 피해를 끼치면 비인간적인 원망을 마구 쏟아냅니다. 떨리는 마음을 진정하며 보건소에 연락하니 병실이 부족하니 집에서 요양하라고 합니다. 별일 없을 거라 믿으며 격리를 시작했지만, 이튿날부터 상황은 급격히 악화되었습니다. 고열 속에 호흡은 가빠지고 음식을 삼키는 것조차 불가능해졌습니다. 보건소에 연락해도 돌아오는 답은 한결같습니다. “현재 특별한 약이 없습니다. 참고 견뎌 보세요.” 너무 힘들다고 약 처방을 요청하자 약을 먹으면 격리 기간만 길어지니 그냥 참으라는 말만 되풀이합니다. 어쩔 수 없이 의사의 조언대로 그냥 견뎌보기로 했지만 몸은 점점 나빠져 갑니다. 결국 숨 쉬는 것조차 힘들어져 죽을 것 같은 두려움에 보건소에 재차 도움을 요청했지만 “산소 포화도를 체크해서 상황을 알려 주세요.”라는 말뿐이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상태는 더욱 악화 되어 산소 포화도가 80까지 떨어졌지만 보건소에서는 “곧 14일이 되니 조금만 더 견디세요.”는 말만 되풀이합니다. 결국 아무 치료도 처방약도 제공 받지 못한 체 14일의 격리 기간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낫기는 커녕 내 몸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었습니다. 폐가 망가져 호흡을 할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15일째 아침에 보건소로부터 근로 복귀 가능 통지서를 받았습니다. 몸은 기력을 잃고 움직이기조차 힘든데 출근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황망하기만 했습니다. 어떻게든 회복해 보려고 링거라도 맞을 생각에 병원을 찾았습니다. 의사는 심각한 표정으로 “당신은 지금 굉장히 위험한 상태입니다. 링거가 문제가 아니라 우선 보건소에 다시 가봐야 합니다.”라며 걱정했습니다. 보건소에 연락하니, 격리 기간이 끝났으니 더 이상 보건소와는 관계없다는 무책임한 대답입니다. 너무 황당하고 화가 치밀어, “14일 동안 보건소에서 왕진 한 번 온 적 있느냐? 약을 한 번 준 적 있느냐? 그냥 참으라고만 하고선 이제 와서 상관이 없다니! 지금 의사가 입원 치료를 받지 않으면 죽는다고 하는데 내 목숨 누가 책임질 것이냐!” 격렬한 항의에 놀랐던지 그제서야 병원을 소개해준답니다. 외국인이라 차별 대우를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 더욱 분노가 치밀었지만 방법이 없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늦은 밤 앰뷸런스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되었습니다.

입원은 했지만 모든 것이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병동은 마치 지옥을 연상케 했고, 병실에서는 환자들의 신음과 한숨만이 간간이 들릴 뿐 어둠과 정막뿐입니다. 가족은 들어올 수도 없고, 와이즈 토토 격리 병동은 외부와 완전히 단절되어 있습니다. 검사 결과 놀랍게도 15일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와이즈 토토 양성 반응이었습니다. 의사조차 15일 동안 이런 상태가 유지된 사례는 처음이라며 당황스러워했습니다. 혈압은 200을 넘게 올랐다 급격히 떨어지기를 반복하고 몸 상태는 악화일로였습니다. 그런 와중에서도 매일 반복되는 엑스레이 촬영과 채혈을 위해 이동해야 하는 일은 육체적 고통을 더했습니다. 100여 미터를 이동하는 것이 그렇게 멀고도 힘들게 느껴진 적이 없습니다. 급기야 산소 호흡기 없이는 숨을 쉬는 것도 불가능해졌고, 나를 둘러싼 의료진은 무기력하게 기계적으로만 대응할 뿐입니다. 우주인처럼 방호복을 입은 간호사들은 살아 있는지 두 시간마다 몇 마디 대화로 확인하는 것이 전부이고 약물 주입조차 제대로 해 주지 않습니다.

결국 나는 걷지도 못하고 산소 호흡기에 의지한 산송장 신세가 되었습니다. 지옥이 이럴까 싶습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끔찍하고 외로운 시간이 계속되었습니다. 와이즈 토토 환자들에게는 면회는커녕 인간적인 돌봄조차 허용되지 않습니다. 감염자라는 이유만으로 죄인이 되어 모든 인권이 박탈된 느낌입니다. 보호자에게 연락을 취하라는 의사의 통고는, 하늘이 무너진다는 말이 이런 느낌이라는 것을 알게 해 주었습니다. 회복이 어려우니 사후 준비를 하라고 합니다. 왜! 하필 내가! 억울함과 후회뿐입니다. 어릴 적 기억부터 시작해 지나온 삶의 순간들이 머릿속을 스쳐 갑니다. “이렇게 죽을 수도 있는 거구나!" "왜 진작 더 잘 준비하지 못했을까?”, “왜 지금까지 용서하지 못하고 고집만 부렸을까?” 이런 저런 생각으로 죽음을 준비하고 있을 때, 주치의가 마지막 방법으로 일본에서 개발되고 있는 새로운 와이즈 토토 치료제 처방을 제안했습니다. 아직 허가되지 않은 치료제로 10일간의 기간이 필요한데 시도해 보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천운인지 치료가 나에게 효과를 보여서 조금씩 호흡이 안정되었고, 음식을 삼킬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병원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머리가 맑아지며, 세상에 대한 원망과 억울함도 사라졌습니다. 다시 한 번 생에 대한 간절함 조차 생겨났습니다. 주치의조차도 기적이라고 말하며 나를 신기한 시선으로 봤습니다.

와이즈 토토로 인해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보니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죽음이라는 상황에 직면하고서야 후회와 반성 속에서 나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너무 늦었지만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얼마나 소중한지, 헛되이 보낸 시간이 얼마나 한심하고 아까운지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서는 여전히 묻고 있습니다. “왜 하필 나였을까?” "이 땅에서 내가 할 일이 뭔가 남아 있는 것일까?” 지금이라도 덤으로 주어진 삶을 진심으로 소중하게 엮어가야겠습니다. 삶이 어느 한 순간에 끝날 수도 있지만, 다시 살아가는 기회 또한 덤으로 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와이즈 토토가 가져다준 고통 속에서 나는 희망과 새로운 삶의 의미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