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너 토토] 생산성 높은 박사과정생을 만드는 힘, 7만 건 빅데이터가 남긴 경고

‘박사과정에서 생산성을 따진다고?’ 2022년에 Research Policy 라는 국제학술지에 나온 “What makes a productive Ph.D. student?”라는 타이틀을 처음 읽었을 때는 실소가 나왔다. 그러나 2000년부터 2014년까지 프랑스 전역에서 STEM 박사학위를 받은 77,143명의 전수 데이터를 모아 학생·지도교수·동료의 특성과 연구 성과를 정밀 분석했다는 사실을 확인하자, 호기심이 경외심으로 바뀌었다.

연구진은 방대한 표본을 돌려 얻은 하나의 메시지를 강조했다. 학생이 가장 돋보이는 조건은 화려한 석학 밑이 아니라, 경력 중반에 들어선 여성 지도교수와 함께 소수 정예의 성별이 뒤섞인 동기 그룹에서 공부할 때라는 점이다. 해당 환경에서 박사생은 논문 편수, 피인용 수, 그리고 공동저자 네트워크 크기까지 뚜렷한 상승 곡선을 그렸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경력 중반 연구자는 연구 경험과 에너지가 모두 충만하지만, 아직 대규모 조직 관리나 외부 활동에 묶이지 않아 학생 지도에 집중할 여력이 있다. 여기에 여성 연구자가 상대적으로 적은 연구비·인력 조건 속에서도 성과를 내기 위해 세밀한 지도 방식을 확립해 왔다는 해석이 힘을 얻는다.

흥미로운 역설은 ‘돈이 많을수록 좋다’는 통념을 깨뜨린 대목에서 확인된다. 지도교수가 국가 단위 연구비를 받아 실험 장비와 데이터에 투자할 때 학생 논문은 더 자주 인용됐다. 그러나 ERC처럼 초대형 국제 그랜트를 보유한 지도교수 밑에서는 학생의 논문 수와 공동저자 수가 오히려 줄었다. 거대한 프로젝트 안에서 박사생이 맡을 수 있는 역할이 잘게 쪼개지고, 연구 기여도가 흐릿해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동료 효과도 뚜렷했다. 동기 숫자가 늘수록 경쟁이 심해지고 자원이 분산되면서 개인 생산성이 떨어졌다. 반면 입학 직후부터 피인용 기록이 뛰어난 동기가 한두 명만 있어도 집단 전체가 고무됐다. 핵심은 ‘적지만 서로를 자극하는 질 높은 동료’였다.

이 결과는 국내 대학원 생태계에도 시사점을 던진다. 학생은 교수의 명성만 좇을 것이 아니라, 경력 단계·성별·연구비 규모를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 대학은 스타 교수 한 명에 자원을 집중하기보다, 투입 대비 산출이 큰 중견 여성 연구자 풀(pool)을 키우는 전략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정책당국 역시 초대형 연구비가 대학원 교육 현장에서 박사생의 학습·발표 기회를 잠식하지 않는지 정밀하게 점검해야 한다.

데이터는 차갑지만 메시지는 분명하다. 박사과정의 성패는 ‘누구와, 어떤 규모의 생태계에서 연구하느냐’에 달려 있다. 빛나는 연구는 거대한 간판이 아니라, 집중과 상호 자극이 살아 숨쉬는 작은 공동체에서 싹튼다.

송원서 (Ph.D.)

슈메이대학교 전임강사 / NKNGO Forum 대표

댓글 남기기

토토 사이트에서 더 알아보기

지금 구독하여 계속 읽고 전체 아카이브에 액세스하세요.

계속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