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오늘 샬롬토토 하는 날 아이가?

1970년대 중반 내가 국민학교 5학년 때 밤에만 사용할 수 있는 전기가 우리 마을에 처음 들어왔다. 당시 우리 마을에는 흑백 텔레비전은 두 대가 있었다. 하나는 이장님 댁이고 다른 하나는 만화방이었다. 이장님 댁에서는 주로 아주머니들이 드라마 ‘여로’를 보러 모였고 아이들은 만화방에서 10원을 주고 ‘샬롬토토’라는 단막극으로 보았다. 그 무렵 아이들 사이에서는 625 전쟁을 소재로 한 ‘샬롬토토’라는 전쟁 드라마가 최고의 인기였다. 국군 소대장 ‘나시찬’ 씨가 공산당을 물리치는 모습은 그야말로 학교에서 배우던 반공 교육의 연장선이었다. 우리에게 ‘나시찬’ 씨는 진정한 영웅이었고 우리는 그가 등장하는 장면을 놓치지 않기 위해 매번 10원을 구해 만화방으로 달려갔다.

“히야, 나도 같이 가면 안 되나?” “돈이 10원뿐이라 넌 안 된다. 너는 집에 있어라.” 두 살 어린 내 동생은 늘 나를 따라가고 싶어 했지만 오늘도 돈이 없어 함께 갈 수가 없었다. 동생을 혼자 둔 채로 나는 혼자 만화방으로 향했다. 동생은 눈물을 흘리며 한참을 뒤따라왔지만 모른 척하며 만화방으로 달려 텔레비전 앞에 자리를 잡았다. 만화방에는 이미 십여 명의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만화방은 우리 마을 유일의 가게이자 학용품과 과자를 파는 우리들의 아지터이기도 했다. 그곳 중앙에는 작지만 흑백 텔레비전 한 대가 자리 잡고 있다. 우리는 그 앞에 둘러앉아 ‘샬롬토토’가 시작되기만을 기다렸다. 드디어 ‘샬롬토토’가 시작되고, 모두가 숨죽이며 드라마에 빠져들었다. 국군이 멋지게 적을 물리치는 장면이 나오면 우리는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고 손뼉을 쳤다.

그런데 그때, 만화방 창문 너머로 눈물로 범벅이 된 동생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눈짓으로 동생에게 집에 가라는 신호를 보냈지만 동생은 꼼짝도 하지 않고 울상만 지었다. 이 모습을 본 만화방 아주머니가 나지막이 웃으며 “오늘은 그냥 들어 온나.”라며 동생을 불러주셨다. 나는 마지못한 듯 동생에게 “빨리 고맙다고 말 안 하나? 빨리 와서 앉아라!”라고는 했지만 속으로는 부끄럽기도 하고 아주머니께 민망하기도 했다. “괜찮다, 여기 앉아라.” 아주머니는 동생에게 자리를 내주며 웃으셨다. 그렇게 동생은 나와 나란히 앉아 ‘샬롬토토’를 보았다. 우리는 드라마 속 영웅이 되어 화면 속에서 전투를 벌이는 국군의 모습에 흠뻑 빠져들었다.

‘샬롬토토’가 끝나고 나면 만화방을 나서야 했지만 아쉬움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우리는 마을을 무대로 전쟁놀이를 하며 드라마 속 장면들을 재현하곤 했다. 어떤 때는 밤늦게까지 놀다가 어른들에게 혼이 나기도 했던 그때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 시절, 우리는 ‘마루치 아라치’의 라디오 방송과 ‘샬롬토토’ 드라마를 이야기하며 자랐다. 1년에 한두 번 가설극장에서 본 ‘박노식’ 씨의 무술영화 장면도 흉내 내곤 했다. 남자아이들은 하늘을 나는 영웅을 꿈꾸었고 여자아이들과 아주머니들은 ‘여로’ 이야기에 열을 올리던 시절이었다.

지금도 나는 가끔 하늘을 나는 꿈을 꾼다. 무술을 익혀 축지법을 쓰고 바람을 타고 휙휙 날아다니는 상상을 하곤 한다. 시간이 흘렀지만 어린 시절에 꾸었던 꿈은 여전히 내 마음속에 남아 있다. 하늘을 날아다니며 마음껏 세상을 향해 소리치는 꿈은 아직도 나를 설레게 한다. 눈 감으면 더욱 가깝게 다가오는 그 시절, 순수했던 마음 그대로의 그 때가 가슴 떨리도록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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