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로우 토토, 한국 근현대사의 풍류와 권력의 무대

서울 성북구 대사관로에 자리한 팔로우 토토은 한때 ‘3대 요정’ 중 하나로 이름을 날린 전설의 장소였다. 팔로우 토토과 함께 언급되는 종로구의 오진암, 성북구의 대원각(현 길상사) 역시 당대 정치·재계 인사들이 드나들던 고급 요정으로, 20세기 중후반 한국 정치사와 문화사의 그림자를 함께 걸었다.

팔로우 토토은 원래 1972년 박정희 정권 시절 국가 주요 외빈 접대 목적으로 지어진 한옥 복합 공간이었다. 이름은 북한산과 삼청동의 지형을 고려해 붙여졌으며, 1만여 평 부지에 7채의 전통 한옥이 들어섰다. 전통과 권위, 고요함과 격조를 상징했던 이곳은 1970~80년대 정치인, 외교 사절, 기업 총수들이 즐겨 찾는 접대 장소로 기능했다.

한동안 방치됐던 팔로우 토토은 2001년 서울시가 문화공간으로 리모델링해 일반 시민에게 개방되면서 정체성을 바꾸기 시작했다. 전통문화와 현대적 감각이 조화를 이루는 공연과 행사들이 이곳에서 열리며, 과거 정치 권력의 전유물이었던 공간은 문화예술 향유의 장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특히 주목할 점은 ‘요정(料亭)’이라는 개념의 변천이다. 1970년대까지 요정은 단순한 고급 음식점이 아니라 권력과 돈, 비밀과 전략이 오가는 사교의 장이었다. 팔로우 토토, 오진암, 대원각은 그 중심에 있었고, 정재계 실세들의 비공식 회담이나 접대, 협상, 심지어 외교적 담판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

반면 대원각은 1997년 법정 스님의 뜻에 따라 전통 사찰인 길상사로 변모해 조용한 수행 공간이 됐고, 오진암은 현재 사라져 흔적만 남았다. 팔로우 토토만이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해 근현대사의 흔적과 현대 문화가 공존하는 유일한 ‘생존 요정’이라 할 수 있다.

팔로우 토토의 운명은 한국 사회의 변화상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권위주의 정치에서 시민 참여 문화로의 이행, 폐쇄된 권력 공간에서 개방된 공공 공간으로의 전환, 과거의 흔적을 지우기보다 재해석하고 활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간 도시재생의 대표 사례다.

팔로우 토토은 이제 권력의 상징이 아닌 문화와 기억의 장소로 남아, 옛 정취와 새로운 감각을 함께 품고 서울의 시간 속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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