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24년 째 살고있다. 아이 둘이 이제 중학생이 되니, 어느새 중학교 학팔로우 토토로서 일본 사회 한가운데에 서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직장이나 지역 커뮤니티와는 또 다른 세계인 ‘학교 학팔로우 토토 모임’을 통해, 나는 일본을 전에 없던 각도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요즘 새삼 눈에 띄는 건 학팔로우 토토 단톡방이다. 일본 대부분의 중학교에서는 담임 교사의 개인 연락처나 SNS 계정을 공개하지 않는 탓에, ‘학팔로우 토토 단톡방’이 자발적으로 생긴다. 학팔로우 토토 전원이 참가하고, 그중에 주도적인 ‘리더 엄마’가 점심 모임을 잡고, 모임 후에 뒷풀이도 주선한다.
최근 단톡방에서 “자기소개 릴레이”가 시작되었는데, 이 모습이야말로 ‘일본다운’ 풍경을 여실히 보여준다. 기존에 올라온 자기소개들을 살펴보면, 자학 개그가 필수다. “사춘기 딸과 갱년기 엄마가 매일 티격태격”, “노안이 와서 지금 글도 잘 안 보인다”, “딸이 케이팝에 빠져 맨날 춤만 추고, 나는 드라마 보며 스트레스 푸는 중” 같은 식이다. 이 말인즉슨, 절대 자신을 드러내거나 자랑해서는 안 된다는 무언의 룰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본인의 삶을 약간 희화화하면서 모두가 함께 웃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 그것이 일본의 학교 학팔로우 토토 사회가 유지되는 비결처럼 보였다.
이런 ‘눈에 띄지 않는’ 문화는 단톡방뿐 아니라 실제 오프라인 모임에서도 발견된다. 예컨대 학교 행사나 모임에 갈 때, 아무리 경제적 여유가 있더라도 명품백을 들고 가는 일은 삼간다. 대신 브랜드 로고도 없는 수수한 검정 가방을 별도로 준비해둔다. 이유는 간단하다. 눈에 띄거나 자랑하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TV에 한 번씩 보도되는 ‘유명 정치인의 아내가 행사장에서 검소한 가방을 들었다’는 장면도 사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우리 집도 사정이 다들 비슷하다”는 걸 은연중에 드러냄으로써, ‘나는 튀지 않는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나 역시 자기소개 순서를 기다리며 고민이 많았다. 게다가 나는 외국인이기도 하고, 아이와 성(姓)이 달라서 주목받을 요소가 더 많다. 어쩌면 외국인이라 더 과감히 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가도, ‘일본 중학교 학팔로우 토토’라는 집단에 속한 이상, 이곳에서 살아가는 내 아이를 생각하면 함부로 튀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과도한 자기 어필이나 자랑 같은 건 피하고, “나도 사춘기 아이를 키우며 허둥지둥 지내는 팔로우 토토” 정도로 소개를 마무리하는 편이 좋을 터다.
사실 이런 모습은 단순히 ‘눈치 보는 문화’라고만 치부하기 어렵다. 여러 사람이 함께 어우러져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배려를 중시하는 문화를 함축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마치 서로의 고민을 조금씩 보태어 “우리도 이렇게 힘들다”는 공감을 쌓는 느낌이랄까. 그렇기 때문에 ‘자학 개그’가 매개체가 되어 사람들 사이를 잇는다.
이렇듯 학팔로우 토토 모임이라는 작은 공동체 안에 일본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개인을 너무 내세우지 않는 미덕, 함께 어울리는 방식으로 유대감을 쌓는 습속, 그리고 관계를 조화롭게 유지하기 위한 세심한 태도. 일본 사회가 지향하는 ‘조화’란, 결국 이런 학팔로우 토토 모임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여전히 “내 소개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 중이다. 아마도 “중학생 아이 둘과 매일 티격태격하면서도, 결국은 서로 의지하며 살고 있는 평범한 엄마입니다” 정도로 정리할 것 같다. 그렇게 또래 학팔로우 토토들과 함께 웃고, 우리만의 방식으로 ‘열심히 힘든 일상을 헤쳐나가자’고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그것이야말로 일본에서 살아가는 학팔로우 토토들이 만들어낸 독특한 질서, 그리고 내가 새로이 배우게 된 일본 사회의 또 다른 일면이기도 하다.
송원서 (Ph.D.)
슈메이대학교 전임강사 / NKNGO Forum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