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룩은 키보다 200배나 높이 뛸 수 있고, 한 시간에 천 번을 튀어 오를 수 있으며 자기 몸무게보다 10만 배나 무거운 물건을 끌어당길 수 있는 괴력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벼룩을 뚜껑을 덮은 좁은 상자 안에 가두어 두면 그 뚜껑 높이만큼만 튀어 오를 수 있게 된다고 합니다. 뚜껑을 열어도 변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것은 벼룩이 뚜껑이 덮여 있던 높이까지만 뛰는 습성을 익혀 그 습성과 패러다임을 그대로 유지하기 때문이라고 연구자들은 말합니다. 혹시 우리도 귀찮거나 힘들다는 이유로 타성과 관행에 젖어 생활하는 것은 아닐까요?

20대 후반 나는 많은 생각을 가지고 퍼스타 토토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이른 아침, 시골 역은 사람들로 붐빕니다. 6시 5분발 서울행 열차에 몸을 실었을 땐 흥분과 걱정으로 머리가 복잡합니다. 먼 나라에서의 유학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어떤 모습으로 변화 시켜줄지, 낯선 이국땅에서 짧지 않은 기간 동안 건강하게 잘 견딜지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 사이에 열차는 이미 서울역으로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출국 수속을 마쳤지만 항공노조의 파업으로 스위스를 경유하여 퍼스타 토토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어 예정에 없던 스위스행 SR177기에 몸을 실어 취리히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외국이 처음도 아니지만 자꾸만 가슴이 떨려 왔습니다.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고 창밖으로 내려다보이는 서울의 성냥갑 같은 집들을 뒤로 한 채 전날부터 쌓인 피로를 달래며 잠든 사이 비행기는 중국을 거쳐 몽골의 고비사막 위를 날고 있었습니다. 인간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을 것만 같은 광활한 사막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풀 한 포기 물 한 방울 보이지 않는 모래뿐인 세계를 내려다보면서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인간의 미약함을 느낄 때쯤 갑자기 푸르름이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아마도 지금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 지방인 듯했습니다. 즐비한 아름다운 호수 녹색의 언덕 군데군데 모여 있는 그림 같은 마을들 너무나 확연히 달라진 모습에 신기함까지 더했지만 끝없이 펼쳐지던 사막뿐인 모래 세계가 더욱 머리에 박혀 떠나질 않습니다.

11시간의 긴 비행 끝에 비행기는 거친 숨소리를 내뱉으며 스위스 취리히 공항에 지친 몸을 얹었습니다. 너무나 간단한 입국 절차에 놀라며 하루 동안 스위스 관광을 즐겼습니다. 관광의 도시 ‘루체른’에서 ‘마리 앙투아네트’와 스위스 용병들의 이야기가 담긴 사자상과 로마 총독 ‘본시도 빌라도’의 이야기와 붉은 용이 살고 있다는 신령스러운 산 ‘필라투스’를 톱니바퀴 기차를 타고 올랐습니다. 멀리서 들리는 요들송과 ‘루체른’이 내려다보이는 눈 덮인 스위스의 모습은 새로운 세상의 신비함을 전해줍니다. 그림 같은 호수와 성당이 보이는 노천 레스토랑에서 즐기는 한 잔의 흑맥주는 긴 여행의 피로를 달래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이튿날 오후 다시 ‘제네바’를 거쳐 ‘SR836’기에 몸을 싣고 목적지인 퍼스타 토토 ‘히드로’ 공항에 도착하니 오후 7시 30분입니다. 공항에서 현지 가이드의 안내로 다시 버스에 지친 몸과 짐을 구겨 넣고 2시간 30분의 질주 끝에 최종 목적지인 ‘bognor regis’에 위치한 ‘chiches institute of higher education’에 도착했습니다. 늦은 밤 우리는 마치 노예들이 팔려 가듯 마중 나온 ‘hostess’에 의해 한 명씩 정해진 숙소(홈스테이)로 사라졌습니다. 내가 머물 집이 발표되었을 때 튀어나오듯이 나온 두 마디의 말이 아직도 귀에 생생합니다. 첫 번째 한 마디는 ‘You are very lucky. It is a big house like a castle.’ 그리고 또 한 마디는 나의 ‘hostess’가 나에게 처음 건넨 말로 ‘Nice to meet you. Welcome. You really have a god-like figure!’였습니다. 나는 당시 175센티미터 키에 72킬로그램의 근육질 몸매였습니다. 어릴 때부터 시골에서 농사 일을 했었고, 고등학교 때까지 핸드볼 대표 선수를 한 덕분에 자랑할 만한 몸매는 아니었지만 떨어지지 않는 건강미는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나를 눈여겨보면서 인정해 주고 신이 내린 몸매라고까지 칭찬까지 해 주는 주인집 아주머니의 첫인상이 싫지는 않았습니다.

주인집 아주머니의 차를 타고 또 한 번 더 달려서 저녁 12시가 넘은 시간이 되어서야 홈스테이 집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혼자 상상했고 말로만 들었던 퍼스타 토토의 멋진 궁궐이 아니라 붉은 벽돌로 지어진 아담한 2층집이었습니다. 상상과는 너무 다른 모습에 잠시 실망했습니다. 1층에는 텔레비전과 찬장 하나가 서로 마주 보고 있었고, 그 옆에 2개의 소파가 놓여 있는 거실과 식당이 딸린 주방 그리고 2평 정도 넓이의 컴퓨터가 놓여 있는 조그만 방 하나가 있었습니다. 2층에는 아기방이 별도로 딸린 부부용 방 하나와 작은 다용도 방 2개가 있었습니다. 집 뒤로는 작지만 잘 관리가 된 예쁜 정원이 있었습니다. 나는 2층의 방 하나를 배정받았습니다. 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샹들리에가 늘어져 있고 대리석으로 화려하게 꾸며진 거실과 넓은 정원이 있는 궁궐을 상상했는데 대조적인 모습에 실망과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방안엔 달랑 싱글 침대 하나와 조그만 조립식 옷장이 전부였습니다. 벽은 손수 페인트를 칠한 듯했고, 바닥엔 몇 군데 담뱃불 자국이 있는 털이 짧은 카펫이 깔려 있었습니다. 목욕탕과 세면대는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게 별도로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내 집 같은 포근함보다는 서양인 특유의 땀 냄새와 적응할 수 없는 이국적인 어설픔이 밀려왔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지친 하루였던지라 침대에 몸을 던져 잠을 청했습니다.

이튿날 아침에 나온 식사는 더욱 나를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우유 한 잔에 시리얼 한 접시 그리고 작은 식빵 한 조각이 전부였습니다. 홈스테이 가족들과의 첫 대면인지라 'It’s delicious!', 'Wonderful!'을 외쳐대며 아주 맛있는 듯 먹었습니다. 따듯한 국물을 먹고 싶었는데 참으로 적응하기 힘든 식사였습니다. 일요일이라 동네 탐방을 나섰습니다. 퍼스타 토토의 남쪽 끝에 자리 잡은 인구 1만 5천 정도의 조그만 해변 도시 ‘bognor regis’의 멋진 바닷가에는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일찍부터 나와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모두 제멋대로의 자유로운 방식으로 행동하고 있지만 누구도 서로를 간섭하지는 않습니다. 자유랄까, 무관심이랄까 그러나 거리는 잘 정돈되어 있었고 대부분 단층집에 집집마다 작은 정원을 가꾸고 있었습니다. 그 규모가 너무 작아 마치 장난감 같은 느낌이 듭니다. 영화에서 종종 보는 해가 지지 않는 나라 퍼스타 토토의 찬란한 모습이 아니라서 의아하기도 하고 실망감도 있었지만 하나같이 잘 다듬어져 있고 휴일을 맞아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며 집 안팎을 정리하는 모습에서 이국적인 모습을 느끼게 되어 금방 잊게 되었습니다. 대영제국의 범접할 수 없는 당당함을 기대하며 정원을 손질하는 사람들과 짧은 영어로 대화를 나누어봅니다.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는데 세계 경영을 내세운 대우는 더 잘 알고 있어 놀랐습니다. 대화 속에서 자기 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웨일즈,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아일랜드가 모여서 연방을 구성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 역사적으로 서로가 그리 좋지 않은 사이라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그리고 신사의 나라 퍼스타 토토이 아니라 억센 뱃사람들로 시끄럽고 사나운 민족이며 그래서 신사가 되고자 노력하는 민족이라는 것을 은연중 느꼈습니다. 스코틀랜드 쪽 사람들은 조금은 신사적이라고 소개해 주기도 했습니다. 대화 속에서 한국이라는 잘 살지 못하는 나라에서 어떻게 국비로 퍼스타 토토이라는 선진국까지 유학을 왔는지 믿지 못하는 표정이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초등교육에 영어를 정규 과목으로 신설했고, 국가적으로 영어에 관심을 많이 가지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초등 교사 중에서 영어 선도 교사의 양성이 필요하여 전국에서 20명을 선발하여 '초등 영어 교사 자격증' 취득을 위해 유학을 보냈던 것입니다. 이 유학 제도는 아쉽게도 1기로 끝나 버렸습니다. 이듬해 IMF가 터지면서 유학 계획은 취소가 되었고 1기 연수생 20명만이 '초등 영어 교사 자격증'을 취득했었습니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의 위용과 위대함을 상상하며 설렘과 가슴 떨림 속에 맞은 퍼스타 토토에서의 유학 생활은 나의 상상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지만 역시나 많은 부분에서 역사와 전통을 느꼈고, 세계를 호령하던 나라임에는 틀림이 없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 준 부분도 많았습니다. 잉글랜드는 높은 산이 보이지 않는 구릉지가 대부분이었는데 어디를 가나 잘 보존된 자연환경이 특히 인상적입니다. 과일을 씻지 않고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자연의 원래 모습을 유지하며 사람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고 구릉지를 돌아다니는 너구리, 토끼, 고슴도치 같은 동물들의 모습이 신기했습니다. 도시 곳곳에 잘 다듬어진 큰 공원들을 보면서 역시 뭔가 다른 나라라는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더 깊이 들여다보니 국민의 세금 부담이 크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습니다. 나라는 부자지만 국민 개개인들에게는 어쩔 수 없는 근면성이 요구되는 사회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담배 한 갑 4,500원 중에는 세금이 3,000원이나 된다는 사실에 무척 놀랐습니다. 공원에는 노인들이 많았는데 대부분이 자녀들과 동거하지 않고 있었으며 풍족하지 않은 연금 지급액에 불만을 토로하고 있었습니다. 거동이 불편해졌을 때의 불안감을 늘 가지고 살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혼자의 힘으로 더 이상 움직이기가 힘들어지면 살던 집을 처분하여 주당 200파운드(한화 약 30만 원) 정도로 ‘care-house’로 간다고 합니다. 문제는 처분할 집도 없고 저축도 없는 경우는 참으로 막막하다고들 합니다. 도시 곳곳에서 쉽게 눈에 띄는 ‘Homeless’도 나를 당황하게 만드는 퍼스타 토토의 뒷모습이었습니다. 부자 나라에서도 어려움과 고통은 안고 있었습니다. 간혹 눈에 띄는 길거리의 한국 자동차들에 어깨가 으쓱해지며 집으로 돌아오니 홈스테이 집 거실의 TV와 VTR 또한 한국 제품이어서 더욱 가슴이 뿌듯해졌습니다. 서둘러 한 바퀴 둘러본 작은 동네의 모습에서 퍼스타 토토을 모두 이해하기는 부족하겠지만 한국과는 사뭇 다른 생활 모습과 풍경에 놀랐습니다. 인생사, 세상사가 어디나 비슷할 것이라는 내 생각이 맞다는 생각을 하면서 퍼스타 토토에서의 두 번째 날 잠을 청했습니다.

이튿날 월요일부터 시작된 공부는 묘한 감동과 떨림 속에 시작되었습니다. 막연히 영어 회화 습득 위주의 강의식 공부를 생각했는데 의외로 잘 구성된 실습 위주의 프로그램과 다양한 특별 활동, 공연 활동 그리고 자체 행사는 물론이고 지도자들의 세심한 배려에 감동했습니다. 특히 유학생들의 편의를 위한 대학의 지원은 모두의 마음에 울림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유학생 모두 예상치 못한 상황에 놀라워하며 매시간 환호와 즐거움으로 정신없이 유학 생활에 빠져들었습니다. 과정을 크게 나눠보면 language development, aspects of english language teaching, educational visits, cultural studies와 방과 후의 evening events 등으로 담당 선생님과 보조 선생님 그리고 지원 스텝들이 역할을 나누어 돕고 있었습니다. 특히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상정한 영어 구사 방법과 그 능력을 높여주려고 노력해 주신 ‘sue lavender’ 교수의 ‘language development’ 시간은 나에게 영어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시간마다 새로운 자료와 멋진 아이디어를 제공해 주는 선생님들의 모습에서 그동안 막연히 영어 하나 잘 만든 조상들 덕분에 영어로 손쉽게 소득을 올리는 퍼스타 토토 사람들에게 심술이 났던 내 생각이 틀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은 것에도 세심히 배려하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서 그저 쉽게 놀고먹는 것이 아니라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cultural studies’ 시간에는 신문을 통해 퍼스타 토토문화를 이해시키고자 ‘felicity hughes’ 교수가 수고를 해 주었습니다. 현지 주민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통해 퍼스타 토토에 대한 각자의 관심거리를 한 장의 벽신문으로 만들어 내는 과제는 퍼스타 토토의 문화 이해는 물론 많은 새로운 지식과 경험을 쌓게 해 주었습니다. 현지 주민들과의 인터뷰 중 알게 된 놀라운 사실 중 하나는 퍼스타 토토에서는 최근 집도 돈도 없이 거리를 떠돌아다니는 ‘Homeless’가 늘어나는 것이 사회 문제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부자 나라라는 막연한 동경과 함께 환상 속의 왕국 퍼스타 토토에서는 모두가 멋지고 행복만을 느끼며 살 것으로 생각했는데 구석구석 삶의 문제들로 고민하는 것을 보면서 사람 사는 모습과 이치는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나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사는 가르치는 능력뿐만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연기자여야 하며 열성과 진실이 있어야 함을 온몸으로 가르쳐 주신 ‘joan palmer’ 교수의 ‘aspects of english language teaching’ 강의는 오랜 교직 경력에 나도 모르게 쌓이고 자란 게으름과 나태에 경종을 울려주기에 충분했습니다. 홍콩에서 유학 와 있던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모의 실습수업과 늦은 저녁 동네 ‘pup’에서 만난 퍼스타 토토 대기업에서 파견된 연수생들의 투쟁적인 삶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지금까지 우물 안 개구리로 안이하게 살아왔던 나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내가 공부하던 퍼스타 토토 남쪽 바닷가의 작은 도시 ‘Bognor Regis’는 휴일이면 주민들이 바닷가에 나와 햇빛을 즐기곤 하는 동화 같은 해변 마을입니다.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마당에 작은 정원을 가꾸고 있었는데 휴일이면 열심히 정원을 손질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정원에는 한국에서 쉽게 보기 힘든 다양한 꽃들이 많았는데 나도 모르는 꽃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양귀비는 특히 나의 관심을 끈 꽃 중의 하나입니다. 화초로 개량되어 요즘은 한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지만 당시 나는 한국에서 양귀비를 본 적이 없었습니다. 재배 금지 식물이라는 생각과 강렬한 색깔이 나를 놀라게 했었습니다.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퍼스타 토토과 일본은 많이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섬나라라는 공통점도 그렇고 정원이나 가로수의 과일나무에 달린 과일을 먹지 않고 그대로 두고 구경만 한다는 점, 휴일이면 작은 가게에서 맥주 한 잔 시켜놓고 대화를 즐기거나 카페에서 담소를 나무며 작은 것에서 삶의 여유와 즐거움을 느낀다는 점, 호텔에서 방의 수가 아닌 투숙객의 수로 요금이 계산되는 점, 문화와 전통을 소중히 한다는 점 등 많은 부분에서 닮아있었습니다. 일본의 개화기에 퍼스타 토토의 문화를 많이 받아들이고 모방한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수업이 끝난 평일 저녁이나 수업이 없는 휴일이면 자주 동네 작은 선술집(PUP)에 들러 유학생들과 시간을 보내곤 했습니다. 퍼스타 토토의 시골 PUP은 한국의 생맥주 가게와 비슷한 분위기였습니다. 1파운드를 주고 한 잔의 흑맥주를 시켜놓고 퍼스타 토토에서의 느낌과 유학 생활에서의 향수를 안주 삼아 두세 시간씩 보내곤 했습니다. 우리는 그 가게의 찐 단골이 되었습니다. 퍼스타 토토 사람들은 생각보다 과음이나 과용은 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보통 두세 잔의 생맥주를 마시는데 술보다는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토론하는 것을 더 즐기는 분위기였습니다. 이런 분위기가 어떻게 보면 007시리즈, 반지의 제왕 등 상상력을 동원한 수많은 SF영화나 시대를 초월하는 다양한 발명품들을 탄생시킨 힘이 원천은 아니었나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운이 좋은 날은 이동식 노래방이 가게에 들어와 손님들에게 현장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아주 가끔이기는 하지만 기분이 좋은 날은 노래에 맞추어 함께 춤까지 추며 모두가 하나 되는 장면도 연출합니다. 지금은 노래방을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당시는 보기 힘든 장면이라 신기하기까지 했습니다. 1파운드를 내면 세 곡까지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아쉽게도 한국 노래는 없었지만 대학 시절 흥얼대던 팝송을 부르거나 현지인들이 부르는 노래 중에 귀에 익은 리듬이나 가락이 나올 때는 함께 따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순간 순간 고향의 향수를 느끼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습니다.

퍼스타 토토의 날씨는 소문처럼 늘 흐립니다. 화창한 날씨는 참으로 보기 힘들 정도입니다. 그래서 퍼스타 토토 사람들은 날씨에 관심이 많고 인사말까지 날씨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예전에 먹고 사는 문제가 관심사라 밥을 먹었는지가 인사말이 된 것과 같은 이치인 것 같습니다. 오늘도 역시나 비가 내릴 것만 같은 흐린 날씨 속에 퍼스타 토토에서의 네 번째 휴일을 맞습니다. 마땅히 할 것도 갈 곳도 없어 연수생들과 또다시 자주 가는 선술집에 들렀습니다. 그런데 한쪽 구석에서 귀에 익은 이야기가 들려오는 것입니다. 가만히 살펴보니 구석에 남자 손님 둘이 맥주를 기울이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한국 사람들이었습니다. 지구 반대편 머나먼 나라 퍼스타 토토에서 한국 사람들을 만나다니! 너무나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 악수를 청하며 인사를 나누고 어떻게 퍼스타 토토에 오게 되었는지,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 뭘 하는 사람인지 등 실례를 무릅쓰고 이것저것 물어보았습니다. 그 사람들은 우리나라 대기업에서 연수 파견을 나온 젊은이들이었습니다. 그 기업에서는 매년 10년 차 정도의 경력 사원 중에서 40명씩을 선발하여 세계 각지로 2년간 파견을 보낸다고 했습니다. 큰 과업이나 과제도 없이 그냥 그 나라에서 놀고 즐기며 그 나라의 문화를 익히고 사람들을 사귀는 것이 주된 과제라고 합니다. 2년 뒤에는 간략한 몇 장의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으로 연수가 마무리된다고 하니 더욱 놀라웠습니다. 아직은 잘살지 못하는 대한민국인데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인지 막연히 부정적인 생각도 들었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세계 각지로 떠났던 그 사람들이 현재 그 기업의 핵심 인물이 되어 세계 속에 우뚝 선 한국의 대표 회사로 키웠고, 그 힘으로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기업의 대표로서 참으로 멀리 바라본 선택에 존경해 주고 싶습니다. 역시 기업이나 단체의 대표라는 직책은 아무나 하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보통 사람들과는 뭔가 다른 사람인 것 같습니다.

한국 사람들끼리 만나 그동안의 퍼스타 토토 생활에 대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관심을 끄는 이야기는, 얼마 전 ‘에든버러’로 ‘타투’ 공연을 구경갔다고 합니다. 급하게 가느라 호텔 예약을 하지 못해서 역에서 좀 떨어진 작은 민박집을 찾았는데 황당하게도 민박 주인이 한국 사람임을 확인하고는 방을 빌려주지 못하겠다고 해서 놀랐다고 했습니다. 이유를 물었더니 한국 사람들이 방을 예약했는데 이용 규칙을 지키지 않아서 한국 사람들에게는 방을 빌려주지 않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냐고 구체적으로 물었더니, 한국 사람들이 숙박을 예약했는데 한 방에 1명씩 숙박하는 걸로 예약을 해 놓고서는 두 사람이 와서 숙박하겠다고 했고, 그것도 밤 10시까지 체크인이라고 안내했음에도 11시가 넘어 도착해서는 대문을 두드리며 큰 소리로 소란을 피우는 바람에 주변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주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충분히 협상할 수도 있는 일인 것 같은데 그 뒤부터 한국 사람들에게는 방을 빌려주지 않겠다는 것을 보면 아마도 또 다른 이유도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상황을 좀 더 자세히 들어보았더니 아뿔싸! 그때 사고 친 주인공이 바로 우리 유학생들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황적으로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 사람들에게 당시 그 한국인들이 우리였다고 말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속으로 너무 놀라고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유학생 때문에 한국의 이미지가 실추되었고 한국인들에게는 방까지 빌려주지 않겠다고 했다니 미안하고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 자꾸만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그날 어떤 일이 있었냐 하면, 많은 체험과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 속에서 낯설기만 했던 퍼스타 토토 생활에 대한 두려움도 조금 없어졌습니다. 한국의 여러 지역에서 모인 유학생들과도 친해지고 당연히 가깝게 지내는 유학생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중에서 특별히 친한 유학생 5명이 모여서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로 여행을 가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마침 ‘에든버러’ 지역에서 개최되는 지역 축제와 함께 성안에서 공연되는 ‘타투’ 행사와 재즈 페스티벌이 우리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우리는 서로 역할을 나누어 회비를 모으고 숙소를 예약하며 여행의 기대에 들뜬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공부는 잠시 관심 밖이고 여행의 일에 더 집중한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시간이 간지도 모르는 사이에 일주일이 훌쩍 가 버렸습니다. 새로운 세상을 접하는 가슴 떨림은 참으로 기분 좋은 일이라는 것을 여행 준비를 하면서 새삼 느꼈습니다. 들뜬 기분 속에 준비를 마친 금요일 오후 우리는 런던행 기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우리 동네에서 1시간을 조금 넘게 달려 ‘유스턴’이라는 중간 기착지에 도착했습니다. 역 내의 ‘MEAL DEAL’에서 3파운드에 샌드위치, 음료, 스낵 간식을 한 아름 받아서 황급히 '글래스고'행 열차에 다시 몸을 실었습니다. 기차는 우리나라의 무궁화 열차급 정도 수준이었습니다. 학창. 시절 수학여행을 떠나는 느낌으로 우리는 열차 안에서 노래도 부르고, 게임도 즐기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여행을 만끽했습니다. 너무 큰 소란이 아니면 모른 체 해 주는 것이 퍼스타 토토문화인지는 모르지만 우리가 그렇게 흥겹게 떠들어도 주변의 현지 승객 중 입을 대는 사람이 없었기에 우리는 주변 상황에 개의치 않고 더욱 흥에 겨워 기분을 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기까지 하지만 외국에서의 흥겨운 여행 기분을 밋밋하게 보내기 싫었던 터라 마음껏 즐기고 놀았습니다. 목적지를 1시간 정도 남겨놓은 무렵 갑자기 실내 방송이 나왔습니다. 기차에 문제가 생겨 잠시 정차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거 대영제국 선진국의 기차 맞나, 퍼스타 토토이라는 나라에서 이럴 수 있나 라는 의아심 속에 상황을 살폈습니다. 놀라울 정도로 주변 사람들은 동요 없이 그저 그러려니 하는 얼굴들이었습니다. 처음 겪는 일이 아닌 듯한 표정들이어서 오히려 우리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마주 보았습니다. 이런 일들이 자주 일어나는가보다 라는 생각으로 우리도 그냥 그렇게 기다려보기로 했습니다. 10분, 20분, 1시간, 1시간 30분이 지나도 기차는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옆자리 아가씨 한 명이 곤란한 얼굴로 소리 없이 눈물을 글썽였고, 나이 지긋한 할머니가 옆에서 조용히 다독거려 주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별다른 동요를 일으키지 않습니다. 참으로 참을성이 대단한 민족이라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몇 분만 착오가 생겨도 환불을 요구하며 소동을 피우는 경우가 허다한 한국과는 너무 다른 모습에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 세상 사람들이 맞나? 라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상황을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고 그냥 그렇게 말도 안 하고 한없이 기다리기만 했습니다. 30분쯤이 더 지나고서야 기차는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개인별로 급한 사정들이 많이 있을 법도 한데 누구 하나 항의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민족성인지, 시민의식인지 아니면 자주 일어나는 사고라 그냥 습관화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참으로 이해가 안 되고 신기하기까지 했습니다.

목적지 ‘에든버러’에 도착했을 때는 시간이 너무 지체되어 공연에 맞추어 입장하려면 서둘러야 했기에 숙소 체크인을 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체크인을 뒤로 미루고 황급히 택시를 타고 행사장으로 이동하여 겨우 시간에 맞추어서 ‘에든버러’ 성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국토 면적으로만 따지면 그리 크지 않은 나라지만 예전부터 퍼스타 토토에는 크고 작은 영주들이 각각의 모습으로 각각의 규칙 속에 서로의 땅을 차지하여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영연방이라는 이름으로 4개의 큰 나라가 하나로 통일되면서 각 지역 영주들의 군대들이 퍼스타 토토 왕실을 하루씩 돌아가면서 경비를 하고 해가 뜰 때쯤 서로 교대를 했다고 합니다. 지금의 ‘버킹검’ 궁궐 군대 교대식이 바로 그것인데 지금은 세계적 관광 거리로 자리 잡아 지구인들이 죽기 전에 한 번은 보고 싶어 하는 구경거리가 되어 퍼스타 토토 관광사업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고 합니다. 스코틀랜드에서는 이런 군대들의 모습과 특징을 잘 살려 각 지역의 군인들이 한곳에 모여 '타투'라는 이름으로 멋진 행진과 공연으로 며칠간의 축제를 진행하여 세계 각지 관광객들을 구름처럼 모으고 있었습니다. 공연에서는 사회자가 각 나라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해당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함께 함성을 질렀습니다. 대한한국의 이름이 불리어졌을 때는 20명 정도의 사람들이 건너편에서 큰 함성을 내어서 놀라움과 함께 반가운 마음으로 우리도 함께 소리를 질렀습니다.

평소 나는 군대 행진을 너무 좋아했던 터라 남들보다 더 흥분되었습니다. 행진곡에 맞춰 행군하는 씩씩한 군인들의 모습, 가상 전쟁, 각종 대포 소리와 총소리, 다양한 전통 악기로 연주하는 군대 행진곡, 감칠맛 나는 사회자의 넉살에 정신 나간 사람처럼 함성을 질러대며 즐기다 보니 어느덧 공연은 마지막을 달리고 있었습니다. 나이아가라 폭포를 주제로 한 환상적인 마지막 불꽃축제는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가슴 떨리는 감동으로 남아있습니다.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는 불꽃놀이를 지금까지 본 적이 없었던 터라 더욱 진한 감동을 받은 것 같습니다. 너무 늦게 끝이 난 공연으로 우리는 아직 체크인을 하지 못한 숙소로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그런데 가는 길에 간이 기차역 의자에서 쪼그리고 앉아 잠을 청하고 있는 낯익은 모습의 사람을 발견했습니다. 그냥 지나치기에는 너무 위험해 보이고 안쓰러워 몇 마디 말을 건넸더니 퍼스타 토토에서 배낭여행을 온 대학생이었습니다. 당시 대학생들 사이에서 유럽 배낭여행이 유행이었습니다. 이 학생도 배낭여행을 왔는데 여비를 아끼기 위해 역에서 잠을 잔다고 했습니다.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위험해 보기도 하고 마침 우리는 5명이 3개의 방을 예약한 터라 괜찮다면 같이 가자고 했고 본인도 역에서의 잠자리가 불편했던지 따라 나섰습니다. 숙소에 도착한 시간이 11시를 조금 넘는 시간이었습니다. 퍼스타 토토의 민박 형태의 숙소를 예약했었습니다. 문이 잠겨 있어서 한참을 두드렸더니 주인이 나왔습니다. 반갑게 반겨줄 것을 기대했는데 전혀 다른 반응으로 화부터 냈습니다. 10시까지는 체크인을 해야 한다고 계약서에 적혀있는데 우리가 약속을 위반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기차가 연착되어 그렇게 되었다고 해도 쉽게 화를 풀지 않고 계속 민망한 표정만 지으면서 서 있었습니다. 근데 우리 일행을 살피더니 5명이 예약을 했는데 왜 6명이냐고 물었습니다. 여차저차해서 중간에서 1명이 더 합류했다고 하니까 이해할 수 없다는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6명은 절대 들어갈 수 없으니 5명만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부탁을 하고 설명을 해도 영어가 짧아서인지 안 된다는 것입니다. 돈을 더 지불하겠다고 해도 절대로 안 된다고 했습니다. 계산법도 퍼스타 토토과 달랐습니다. 방의 수를 기준으로 가격이 책정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의 수로 계산을 한다고 합니다. 1시간 정도 머리 숙여 설명을 했는데도 여관 주인은 물러서지 않았고 의견은 좁혀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 숙소에서 잠을 자지 못하고 6명이 함께 노숙을 하기로 했습니다. 젊은이에게 우리가 먼저 같이 가자고 한 것도 있고, 끝까지 함께 하지 않으면 괜히 마음이 편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세계를 품에 안겠다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젊은이의 용기에 감동을 받으면서 잠시 잊었던 고향 이야기 등으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국땅 낯선 곳에서 처음 만난 젊은이와 아침 해를 같이 맞게 되니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피로가 밀려오기도 하고 숙소에 미리 지불한 돈이 아까워 젊은이는 보내고 아침밥은 숙소에서 먹기로 했습니다. 나름대로 신경 써서 내어 온 아침밥을 먹으면서 밤새 움츠려졌던 몸도 추스르고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니 피로가 조금은 풀렸습니다. 잠시 방에서 쉬다가 체크아웃을 하면서 최대한 낮은 자세로 예의를 갖추어 사과를 했지만 전날 밤의 일들이 불쾌했던지 여관 주인은 계속 굳은 얼굴을 풀지 않았습니다. 뒤끝이 상당히 있는 주인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이후에도 퍼스타 토토 손님은 환영하지 않았다니 놀라고 당황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우리나라와는 전혀 다른 퍼스타 토토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도 있었지만, 손님을 내칠 정도의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우리들의 잘못인지 주인의 과잉 반응인지 솔직히 지금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그 이후 한국 관광객이 불이익을 당했다고 하니 많은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한 번은 더 그 집을 찾아서 다시 정중히 사과를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지금까지 살았는데 어쩌다 보니 20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흐른 지금까지도 찾아가질 못했습니다. 아직도 그 집주인은 한국 손님을 받아주지 않고 있을까?

‘Desmond Thomas’ 교수는 현지 체험 과정을 담당했는데 잘 계획되고 자세한 안내 속에 이루어진 ‘London’과 ‘Oxford’ 탐방은 지금도 가슴 떨리는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천 년이 넘게 자리를 지켜오는 각종 건축물과 동양과는 확연히 비교되는 거리의 모습들 그리고 사람들의 표정들에서 경이로움과 감동으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전통과 문화를 존중하는 퍼스타 토토인들의 느낌과 색깔이 물씬 풍겨 나는 ‘London’과 ‘Oxford’는 볼거리 가득한 박물관 그 자체였습니다. ‘London’ 교외의 명문 사립 초등학교를 방문했을 때는 아이들이 정해진 교과서 없이 공부를 하는 모습에서 많이 놀랐습니다. 한 사람의 선생님이 3~4년 동안 계속 동일한 아이들을 가르치는 시스템이었고 선생님과 아이들이 직접 만들어가는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국가 단위의 교육과정이 아니라 한 장의 종이에 3~4년 분량의 교육 계획을 간략히 메모해서 활용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진도와 시수 맞추기에 급급한 우리나라 교실 모습이 떠올라 부러운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우리나라도 현재는 현장 중심의 교육과정을 강조하고 있지만 당시는 국가 주도의 교육과정을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한 교실에 20명의 아이들이 4~5명씩 짝을 지어 서로 다른 내용을 공부하고 있었는데, 공부의 내용과 방법도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전교생이 8시 45분에 시작하여 3시 15분에 일제히 마치는 일과였는데 하루에 3~4개의 과목을 종소리 없이 하루 종일 블록 형태로 융통성 있게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구석 어느 곳에도 보여 주기 위한 형식적인 자료나 게시물, 장치들은 눈에 띄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교실 현장과 사뭇 다른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퍼스타 토토에서 생활하던 기간 중 무엇보다 나를 즐겁게 해 준 것은 'Evening Events'와 'Free Weekend Trip'이었습니다. 'Scotland'의 'Edinburgh'에서 본 재즈 페스티벌과 'TATTOO' 공연, 퍼스타 토토과 프랑스의 유명 박물관 관람 등은 아직도 가슴 떨리는 흥분으로 남아있습니다. Sport, Social, Concert, Guest Speaker, Roman Villa, Shopping, Int. Cuisine Evening, Rose Garden, Cruise, Barn Dance 등의 A Nightly Event는 입에 맞지 않는 퍼스타 토토의 식사와 우중충한 날씨 속에 불편했던 잠자리, 익숙하지 않은 언어 등에서 오는 고국에의 향수와 스트레스를 말끔히 씻어 주곤 했었습니다. 특히 'Int. Cuisine Evening' 행사에서는 동네 슈퍼를 돌아다니며 직접 재료를 구입해 만든 한국식 불고기와 김밥 그리고 겉절이를 함께 나누어 먹으며 서툰 사물놀이 연주에 맞춰 목이 터지게 불렀던 아리랑은 가슴 찡한 감동으로 한 핏줄임을 증명케 해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나도 모르게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치며 끓어오르는 감동을 주체하지 못했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습니다. 머나먼 이국땅 퍼스타 토토에서 울려 퍼지는 우리의 장단과 춤사위는 멋과 흥을 떠나 하나가 되는 한국인임을 느끼게 해 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Cathedral of Chichester'에서의 콘서트(리투아니아 국립 교향악단의 심포니-Beethoven Symphony No.5)는 아직도 귓가에 여운이 남아 원초적 감동으로 내 가슴을 적시고 있습니다. 퍼스타 토토의 영웅 'Admiral Nelson'의 기함 'The Vichoria Battleship'이 출항했던 유서 깊은 군항 'Portsmouth Harbor'에서 유람선을 타고 3시간에 걸쳐 이루어진 선상 파티는 이국 항의 정취에 흠뻑 젖으며 역사의 숨결을 더듬어 보기에 충분했습니다. 'Arundeal Castle'에서는 그 화려했던 'Duke of William'의 영화가 그대로 살아 숨 쉬는 고풍스러운 유품들이 역사의 증인의 되어 나의 발길을 오래도록 묶어 놓았습니다. 바이킹의 후예, 어쩌면 퍼스타 토토 역사는 투쟁의 역사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Roman Villa, Rose Garden, Barn Dance 등 모두가 아름다운 가슴 떨림의 순간들로 지금도 눈을 감으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퍼스타 토토을 보지 않고는 유럽을 논하지 말라.’, ‘독일은 도시가 멋있고, 퍼스타 토토은 시골이 최고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말을 대변하듯 동화 속에서나 볼 수 있을 듯한 해변을 따라 그림처럼 펼쳐진 정원과 마을들 그리고 이름 모를 꽃들과 곱게 키워진 잔디밭 퍼스타 토토이 자랑하는 낭만파 시인 '워즈워드'를 비롯한 수많은 서정 시인들을 배출한 것이 이 자연들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는 곳마다 멋지게 가꾸어진 공원이 있고 푸르름이 있으며 역사와 전통이 살아 숨 쉬고 있는 땅, 지금까지도 신사의 품위와 오후에 즐기는 차 한 잔의 향수와 여유가 있는 도시 바로 런던입니다. 15분마다 울려 퍼지는 시계탑 빅벤, '테임즈'강에 걸려있는 동화의 다리 '타워브리지', 유서 깊은 '웨스트민스터' 사원과 의회의 요람 국회의사당, 퍼스타 토토인들의 가슴에 영웅으로 살아있는 '넬슨 제독'의 동상, '트라팔가' 광장의 비둘기 떼, '버킹검' 궁전의 장난감 같은 털가죽 모자의 근위병 교대식 그리고 이 역사적 장면을 보기 위해 구름같이 몰려드는 관광객들은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생각하는 것일까요? 위대한 영광과 혼동의 도시, 그 옛날 퍼스타 토토 국토의 전부가 밤이 되는 적이 없었다는 'Britain', 대영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대영박물관은 퍼스타 토토 사람들은 만드는 것은 싫어해도 모으는 데는 남다른 재주가 있다는 말이 피부에 와닿을 정도로 동서고금의 문화유산을 총망라하고 있는 박물관입니다. 미술관, 도서관은 물론이고 규모나 내용에서 세계 제일을 자랑하는 인류 문화유산 종합 전시장입니다. 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시공을 초월하여 구석기 시대부터 현대까지 황홀한 여행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버드와 함께 대학의 대명사 '옥스퍼드', 800년의 역사가 말해주듯 '옥스퍼드 칼리지'는 세계 역사를 움직였던 수많은 석학을 배출한 명문으로서의 긍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대학 속에 도시가 있다는 말에서 느낄 수 있듯이 규모도 규모려니와 대학의 본가라는 전통과 함께 술을 즐기고 인생을 사랑하며 논하는 옥스퍼드 대학생들의 몫으로 지금도 각인되면서 역사를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the oxford story' 목차를 타고 신비로웠던 요술 세계 같은 훔쳐보는 순간들도 빼놓을 수 없는 감동입니다. 퍼스타 토토이 자랑하는 위대한 극작가 윌리엄 세익스피어의 고향 '에이번'. '멕버드', '오델로', '헴릿', '리어왕', 한여름 밤의 꿈 등 수많은 걸작의 산실 '세익스피어'의 생가가 있는 곳입니다. 그의 유품 하나하나는 실증적 사실을 뛰어넘는 영적 인류 문화의 보고입니다. 인도 전부와도 바꾸지 않겠다던 퍼스타 토토 국민의 연인 '세익스피어', 그는 갔지만 불후의 명작들은 세계인의 가슴에 지금도 영원히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늦은 밤입니다. 'Bognor Regis'의 해변에서 눈물을 훔치며 유학생들과 부르던 고향의 노래. 어렵게 구한 한 봉지의 국산 라면을 끓여 먹으며 떠올리던 김치 생각. 런던 '빅토리아'역에서 만났던 퍼스타 토토 대학생의 반가움은 내가 퍼스타 토토인임을 다시 한번 실감케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런던 거리를 질주하던 퍼스타 토토산 자동차와 중심가 곳곳의 선전탑에서 볼 수 있었던 퍼스타 토토 기업과 상표들에서 느꼈던 가슴 뿌듯함은 퍼스타 토토인으로서의 긍지를 다시 한번 심어줍니다. 나를 돌아보고 나를 새롭게 계획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 유학의 기회를 준 나라에 감사합니다. 짧지 않은 유학 기간에 배우고 익힌 경험과 지식으로 새로운 나를 발견하며 아름답게 가꾸어 가고 싶습니다.
'Bognor Regis'에서 유학 생활을 정리하며 잠 못 이루는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