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역 앞에서 서로 마주 서서 아무 말 없이 서 있는 젊은 커플을 가끔 볼 수 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소해 보이는 갈등 같아도, 속을 들여다보면 생각보다 복잡한 심리가 뒤엉켜 있다.
흔히 남녀가 부딪히는 이유를 ‘누가 잘못했느냐’로 단정 짓기 쉽다. 하지만 실제 문제는 그보다 미묘한 지점에 놓여 있다. 예를 들어, 남성은 이성적·분석적 사고를 중시하는 T(Thinking) 성향이 많다고들 하고, 여성은 감정적·공감 능력이 높은 F(Feeling) 성향이 강하다는 통계를 흔히 접한다. 모든 남녀가 그렇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 남성은 “일단 상황이 해결되면 괜찮다” 쪽이고, 여성은 “지금 이 순간 서운하고 섭섭하다” 쪽에 가깝다. 서로 다른 두 축이 만나면, 작은 사건도 쉽게 커진다.
가령 술자리에 간 남성이 밤늦게 연락을 끊었다고 해보자. 남성은 “자고 있을지 모르니 괜히 방해하고 싶지 않다”는 식으로 배려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상대방 입장에서는 “무슨 일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과 “나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건가” 하는 섭섭함이 쌓인다. 그러고도 다음 날 아침 별다른 설명 없이 “뭐 해?”라고만 묻는다면, 갈등이 터지는 건 시간문제다.
갈등을 풀기 위해선 “나 사실 서운했다”고 솔직히 털어놓는 게 좋다는 주장도 있다. 문제는 그 과정을 불편해하거나 두려워하는 경우가 많다는 데 있다. 사소한 감정을 드러냈다가 ‘좀스럽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꾹 참다가, 결국 어느 순간 폭발하는 식이다. 남성은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고 답답해하고, 여성은 “내 마음도 몰라주는데 무슨 말을 하겠느냐”고 억울해한다.
문화적 차이 역시 한몫한다. 예를 들어 한국과 일본 사이를 보면, 일본 특유의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고 삭히는’ 성향이 갈등을 심화할 때가 있다. 한국인은 비교적 즉각적인 감정 표출이 익숙한 편이고, 일본인은 차곡차곡 쌓아두었다가 한 번에 터뜨리는 경우가 많다. 한·일 커플 사이에서 “왜 갑자기 이렇게 폭발하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나오는 것도 이런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된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일까. 완벽한 공식은 없지만, 결국 시간과 대화가 중요하다. 자주 다투는 젊은 커플일수록 서로를 예민하게 파악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여러 번 부딪히며 “이런 상황에서 상대는 어떻게 느끼는지”를 조금씩 배워가는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상대가 원하는 ‘대화 방식’을 함께 만들어가야 갈등의 빈도가 줄어든다.
결국 핵심은, “왜 화가 났는지”를 좀 더 세밀하게 짚어보고, 그 차이를 인정하는 태도다. 남성이라면 ‘사건 해결이 우선’이라는 생각을 잠시 접고, 여성이라면 ‘사소한 것도 말해도 된다’는 쪽으로 마음을 열어보면 어떨까. 지하철역 앞에서 아무말도 없이 기싸움하는 커플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았지만, 언젠가 이 ‘온도 차이’도 웃으며 넘어갈 수 있는 날이 오리라 믿는다.
송원서 (Ph.D.)
슈메이대학교 전임강사, NKNGO Forum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