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울증이 심각하다는 말을 흔히 듣는다. SNS에는 남들의 “잘사는 모습”이 넘쳐나고, 입시와 취업은 ‘과도한 경쟁’으로 가득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는 우울감과 절망감, 게다가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이들도 점점 늘어 가는 통계를 보면 마음이 편치 않다. 다만 이런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우리가 꼭 짚고 넘어갈 사실이 있다. 바로 “왜 사느냐”는 질문에 굳이 대단한 이유가 필요하지 않다는 점이다.
“태어났으니 살아가는 것”
누군가 우리에게 “대체 왜 사느냐”고 묻는다면, 그때 꼭 “이러이러한 이유로 살아야 한다”는 대답을 내놓을 필요는 없다. 어쩌면 인생이란 그렇게 거창하고 장황한 이유가 있어서 지속되는 것은 아닐 수 있다. 우리는 태어났기에 사는 것이다. 마치 숨을 쉬고, 밥을 먹는 일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말이다.
사람들은 때로 “나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 “쟤는 저렇게 잘나가는 데 나는 왜 이럴까” 하는 생각에 빠지곤 한다. 그러나 이왕 태어난 거, 내 두 발로 일어설 수 있고, 손으로 무언가를 잡을 수 있고, 내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인생은 충분히 의미 있다. 굳이 목표나 이유를 찾지 않아도 괜찮다. 이유가 생기면 그것대로 좋고, 없으면 없는 대로 사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삶의 모습이다.
SNS나 각종 미디어를 통해 우리는 남들이 얼마나 멋진 집에서 사는지, 어디서 맛있는 걸 먹는지, 누구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지 시시각각 접한다.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나는 왜 저렇게 못 살까”라는 생각을 하며 움츠러들게 된다. 그러나 사실 남들이 얼마나 화려한 삶을 살든, 그것은 내 삶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
비교는 두 가지 결과를 낳는다. 하나는 ‘열등감’이고, 다른 하나는 ‘우월감’이다. 둘 모두 결국 우리를 병들게 할 뿐이다. 내가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못하게 만들고, 늘 불안과 의심 속에 살도록 부추기는 것이다. 삶이 힘든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런 비교에서 시작된다.
어려운 시절에는 “감사하자”라는 말조차 공허하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주변을 조금만 둘러보면 감사한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금방 깨닫게 된다. 걸어 다닐 수 있는 두 다리, 세상을 볼 수 있는 두 눈, 매일 숨을 쉬고 밥을 먹을 수 있는 것 등. 중환자실에 누워 계신 분들을 생각하거나, 날 때부터 아픈 아이들을 생각하면 그저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축복이다. 감사의 크기를 굳이 재지 않아도 된다. 작은 것부터 찾으면 된다. 나무의 푸르름, 거리에서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미소, 오늘은 어제보다 날씨가 좋아서 기분이 조금 편안해졌다는 사소한 부분까지.
감사라는 마음의 창을 열면 그 안으로 행복이 서서히 들어온다. 우울감도, 불안감도 한 발짝 물러서는 기분이 든다. 사실 우리의 ‘해야 할 일’보다 ‘할 수 있는 일’에 더 집중하는 것이야말로 마음을 건강하게 지키는 방법이다.
물론 이런 삶이 가능하려면 우리 사회가 일정 수준의 안전망을 갖춰야 한다. “마음 편하게 살라”고 말은 해도, 기본적인 생계와 주거 문제조차 해결되지 않는다면 그 말이 공허하게 들릴 것이다. 그래서 누구나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받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고, 필요할 때 쉬어 갈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일이 중요하다.
또한 “결국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가장 풍요로운 삶 아닐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여유, 하고 싶으면 마음껏 해볼 수 있다는 기회, 그 두 가지가 균형을 이루는 사회라면 사람들은 굳이 남들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고도 살 수 있을 것이다.
“왜 사느냐”라는 질문에 거창한 명제를 찾으려다 보면, 오히려 자꾸 불안해질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그 답을 간단하게 정리해본다. “태어났으니까 사는 것이다.” 이 담백한 선언이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길 바란다. “이유가 없으니 의미가 없다”가 아니라, “이유가 없기에 더 자연스럽고 자유롭다”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마음 한구석에 무거운 짐을 느끼는 이들이 있다면, 지금 이 글을 빌려 작은 응원의 말을 전하고 싶다. “당신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 충분히 잘 살고 있고, 이미 훌륭하다.” 감사라는 키워드를 붙들고 일상에서 자그마한 행복을 발견해보자. 우울과 비교의 덫을 조금씩 몰아낼 때, 우리는 비로소 “태어났으니까 살아갈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송원서
슈메이대학교 전임강사 / NKNGO Forum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