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서 도쿄로 돌아오는 캐세이 퍼시픽 항공 비행기 안에서 우연히 한 편의 한국 영화를 보게 되었다. 제목은 〈대도시의 사랑법〉. 지난해 개봉했고,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라고 했다. 관객 수가 80만 명 정도라고 하는데, 솔직히 나는 이 영화에 대한 정보를 전혀 몰랐다. 그저 돌아오는 길에 ‘한국어로 된 영화 중 안 본 것’을 골랐을 뿐이다.
기내 스크린으로 접한 이 영화는 생각보다 훨씬 깊은 울림을 주었다. 내용은 간단히 말해 성소수자인 남성과 한국 사회에서 주변부로 밀려난 여성의 우정을 다룬다. 남성 주인공은 게이이고,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게이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영화 속 에피소드를 통해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내가 그동안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게이의 이미지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된 계기가 되었는데, 흔히 떠올리는 ‘여성스러운 게이’가 아니라 남성적인 게이도 많고, 오히려 그들이 더 쉽게 주변의 시선에서 숨어들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사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임에도, 나는 내가 미처 인식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다.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알아차리는 ‘튀는’ 스타일의 성소수자들 외에도, 정체성을 숨기고 살아가는 이들이 얼마나 많을까. 이 영화를 보며, 우리 사회에 상상 이상으로 다양한 성소수자들이 공존하고 있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럼에도 상당수 사람들은 ‘내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을까?’라는 막연한 의문 속에, 그 가능성조차 부정한 채 살아간다.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게 아니라,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란 걸 깨닫기까진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
사실 한국에서 공개적으로 커밍아웃을 한 대표적 인물이라면 2000년 9월에 용기를 낸 방송인 홍석천 씨가 떠오른다. 그로부터 어느덧 25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성소수자들이 마음 놓고 정체성을 밝힐 수 있는 환경은 충분하지 않다. 그들은 ‘목소리를 내면 어떤 불이익이 닥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산다. 이런 현실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편견과 획일성에 익숙한 구조인지 보여준다.
내가 오래 해외에서 지내다가 한국을 돌아볼 때면, 한국은 유독 ‘하나의 의견이나 하나의 분위기’로 빠르게 통일되는 느낌이 강하다. 때로는 국가적 위기 상황 등에서 높은 단결력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 감추어진 ‘다양성을 억누르는 문화’가 엄연히 존재하는 것 역시 사실이다. 의견이 다르면 쉽게 튀어 보이고, 소수자나 마이너리티는 그 자체로 이질적인 대상으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번에 비행기 안에서 이 영화를 본 사실 자체가, 시대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극장에서조차 대중적인 퀴어 영화를 접하기 쉽지 않았는데, 해외 항공사의 기내 엔터테인먼트 목록에서조차 성소수자 주제의 한국 영화를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 인상 깊다. 물론 이것이 우리 사회가 이미 다양성을 완벽히 수용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작은 변화의 움직임이 곳곳에서 시작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영화를 덮고 난 뒤 떠오른 생각은, “우리 주변에도 분명 성소수자가 있을 텐데, 난 그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까?”라는 질문이었다. 비단 성소수자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여러 가지 생각이나 가치를 지닌 사람들이 공존할 수 있는 사회야말로 건강하다. 그리고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내 주변과 일상에서부터 각자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내가 이번 여행 중 느낀 가장 큰 깨달음은,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는 사실이다. 때로 사람들은 알지 못하기 때문에, 혹은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편견을 갖는다. 그 편견이 깊어지면 소수가 누리는 자유와 권리는 물론, 자신의 가능성까지도 제한하기 마련이다. 어떤 삶의 모습이든, 우리가 조금만 더 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오히려 세상은 더 다채롭고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이렇듯 작은 영화 한 편이 나에게는 아주 큰 울림을 주었다. 숨죽이고 있는 많은 성소수자들, 그리고 각종 사회적 편견으로 인해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이들이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들에게 조금 더 따스한 시선, 열린 마음을 보내는 것이 ‘다양성’이라는 이름의 미래를 열어가는 첫걸음이라 믿는다. 홍콩에서 도쿄로 돌아오며 만난 이 영화가, 앞으로 내가 주변을 바라보는 시선을 한층 넓혀주었다는 점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이 이 영화를 비롯해 다양한 이야기를 접함으로써, 우리 사회가 서로 다른 존재들을 존중하고 응원할 수 있기를 바란다.
“편견 없이 바라보면 세상은 더 다채로운 빛을 띈다.”
그 색의 스펙트럼이야말로 진정한 ‘대도시의 사랑법’일지도 모른다.
송원서 (Ph.D.)
슈메이대학교 전임강사 / NKNGO Forum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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