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시골 아이들의 방학은 단순한 휴식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자연과 하나 되는 아이들의 모습에는 자연과의 생생한 교감이 담겨 있습니다. 방학이면 꼭 해야 하는 숙제는 식물채집, 곤충채집이 있었습니다. 거미줄로 만든 잠자리채를 들고 곤충들을 쫒던 기억은 불편하고 귀찮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토토사이트 돈받는법 배운 많은 교훈이 우리의 삶에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방학 동안 자연 속에서 아이들이 경험한 모든 활동은 단순히 재미있는 놀이를 넘어 자연의 섭리를 배우고 삶의 지혜를 익히는 시간입니다. 도라지를 캐 먹고, 버섯을 채취하며 칡뿌리를 찾는 아이들의 모습은 자연과의 끊임 없는 대화 속에서 자신만의 배움을 쌓아갔었습니다. 병정개미의 강렬한 산성 물질을 경험하며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끼고, 병아리를 키우며 생명의 소중함과 책임감을 배웠던 체험들은 교과서로는 배울 수 없는 깊은 교육적 가치를 담고 있었습니다. 토토사이트 돈받는법 배우는 교육은 단순히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라, 인간성과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오늘날의 교육 현장에서 자연과의 교감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도심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은 자연을 탐험할 기회가 적고, 디지털 기기 속의 가상 세계가 현실의 자연을 대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연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교육의 장입니다. 계절의 변화 속에서 삶의 순환을 배우고, 작은 곤충과 식물들을 관찰하며 생명의 신비를 깨닫게 됩니다. 이런 경험들은 교실에서의 이론적인 학습보다 훨씬 더 오래도록 아이들의 기억 속에 남고 삶의 본질적인 가치를 일깨워 줍니다. 우리의 교육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자연 속에서 배우고 성장할 기회를 더 많이 제공해야 합니다. 경쟁 중심적 교육에서 벗어나,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자신만의 속도로 세상을 경험하고 배우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자연은 그 자체로 큰 스승이며, 그 안에서 우리는 인간으로서의 본질적인 가치를 다시금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자연 속에서의 경험은 단순한 추억이 아닙니다. 그것은 아이들에게 삶의 방향을 제시하고, 어른들에게도 잃어버린 여유와 관용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길잡이가 됩니다. 자연의 가르침 속에서 다시금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야! 방학이다!’ 아이들은 만세를 부르며 허리에 책보자기(당시는 가방이 없었고 넓은 보자기에 책을 싸서 다녔음)를 둘러메고 후다닥 교실을 빠져 나갑니다.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는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건물로 교실 바닥은 땅에서 1미터 정도 떠 있고 외벽은 콜타르를 입힌 원목으로 되어 있는 오래된 학교였습니다. 1학년 때는 전교생이 600명에 이르는 제법 큰 학교였는데, 해가 갈수록 학생들이 줄어들어 내가 6학년 때는 200명의 학생만 남게 되었고, 현재는 폐교가 되어 넓은 운동장은 콩밭으로 변해 있습니다.

여름 방학이면 아이들은 즐겁고 신이 납니다. 숙제는 농사일을 돕느라 처음부터 할 생각을 하지 않았고 선생님도 대체로 이해를 해 주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꼭 해가야만 하는 숙제가 세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식물채집이고 또 하나는 곤충채집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풀씨(잔디씨)를 훑어가야 했었습니다. 곤충채집과 식물채집을 왜 그렇게 강조했는지는 지금도 이해가 안 되지만 풀씨를 훑어가는 이유는 어른이 되고서야 알았습니다. 당시 잔디 씨는 쌀보다도 비싸게 팔렸습니다. 한국의 잔디는 원래 ‘띠(뿌리)’로만 번식을 시킬 수 있는데 어떤 과학자가 씨앗으로 번식시키는 방법을 개발했고, 미국에서 한국 잔디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합니다. 한국이 어려웠던 시절 잔디씨는 외화벌이의 수단으로 한 몫을 했고 학교 학생들까지 채취를 강요당할 정도로 온 국민이 잔디씨를 훑었습니다. 방학 때 학생들이 숙제를 잘 해서 목표량을 채우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했을 때는 방학이 끝나기 무섭게 수업을 접고 산으로, 들로 잔디씨를 훑으러 나가야 했습니다. 요즘이야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당시는 모두가 군소리 없이 따랐습니다.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국민소득 1,000달러 수출 100억 달러 달성에 앞장서자.’, ‘오늘은 쥐 잡는 날’, ‘우리 모두 간첩 신고’, ‘반공 토토사이트 돈받는법’, ‘삐라를 신고합시다!’, ‘식량 자급자족 달성하자-통일벼’, ‘혼분식 장려’, ‘낙곡 줍기 운동’ 등 당시 자주 듣던 말들이 떠오릅니다만 지금은 오래 된 기억으로만 흐릿하게 남아있을 뿐입니다. 농담으로 주고 받던 말 중에 ‘나중에는 물도 돈 주고 사 먹어야 할 거야.’, ‘텔레비전도 들고 다니며 보는 세상이 올 지도 몰라.’ 등이 있었는데 당시는 황당하고 꿈같은 이야기였는데 지금은 현실화되어 모두가 그렇게 하고 있으니 참으로 신기합니다.

학교에서 전교생이 풀씨를 훑으러 가는 날이면 우리는 그저 신이 납니다. 모처럼 들판의 공기를 마시는 일도 신나지만 무엇보다 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우리를 더욱 즐겁게 해 줍니다. 나간 김에 낙곡을 줍기도 하고 시골 아이들만의 재미있는 놀이를 즐기는 우리는 너무나 즐겁고 신이 났었습니다. 특히,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우리에게 많은 추억을 만들어주셨었습니다. 소풍, 수학여행 등의 행사 외에도 신나는 일들을 많이 알려주시고 함께 했습니다. 처음 담임이 되고 갑자기 병아리를 키우자고 제안했습니다. 수학여행 경비로 쓰자고 하시면서 병아리 살 돈을 내놓았던 것입니다. 읍내에 장이 서는 날 예쁘고 활발한 병아리 10마리를 사 왔고, 우리 반 모두는 학교 구석에 병아리 우리를 만들어 돌아가면서 돌봤습니다. 잘 자라주어 중닭이 되었는데 여름 방학 장마를 이기지 못하고 모두 죽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병아리를 잘 돌보지 못한 죄책감과 불쌍한 마음에 눈이 붓도록 울었습니다. 지금도 어릴적 아픈 추억 중의 하나로 남아있습니다.

잔디씨를 훑다가 지겨우면 선생님 몰래 도라지도 캐 먹고, 칡뿌리도 찾아서 먹곤 했습니다. 비가 온 뒤면 각종 버섯도 지천으로 깔려 있는데 시골 아이들은 먹을 수 있는 버섯과 독버섯을 선생님보다 더 잘 구별합니다. 그래도 지겨우면 잔디씨가 달린 줄기를 뽑아서 마주 걸고 끊어먹기 대결을 하기도 합니다. 벌칙은 개미 똥구멍 빨기입니다. 튼튼한 병정개미를 잡아 엉덩이를 누르면 투명한 물방울이 맺힙니다. 아주 작은 양이지만 혓바닥에 떨어뜨리면 1초 정도 정신을 잃을 정도로 쇼크가 옵니다. 아주 강한 산성이면서 마취 성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병정개미들은 싸움을 할 때 입으로 물고 뜯는 것이 아니라 개미산을 쏘며 공격과 방어를 합니다. 외에도 새 둥지를 터는 아이도 있고, 고구마밭에서 추수 후에 남겨진 고구마를 찾는 아이도 있습니다.

학교로 돌아올 때쯤이면 잔디씨도 잔디씨지만 여러 가지 부산물들을 많이 모아서 돌아오곤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 가능하지 않은 일들이지만 그 때는 그냥 그렇게 즐겁게 했었던 일들이 참 많았습니다. 요즘은 세상이 각박해지고 여유가 사라져 예전에 가능했던 일들이 꿈같은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예를 들어 수박 서리를 하다가 발각되는 날이면 수박밭 전체를 배상하는 것은 물론이고 형사 처벌도 각오해야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조금은 서로 여유를 가지고, 조금은 서로 용서하는 세상이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